강억목사님, 말복입니다.

2008.08.09 08:02

홍정 조회 수:20194

목사님께서 미국에 가시는 덕택에 중생들 몇이 큰 안도를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나 연례행사를 못하시니 목사님 건강이 조금 걱정됩니다. 여름에 냉면장사를 잘 하면 한 철 장사로 일년을 지낸다고 들었는데, 3번의 기회가 주어진 초복, 중복, 말복중 한번도 목사님과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한 올해는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저는 이런 저런 기회로 3번은 간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물도 좋고, 공기도 좋고 또 새로운 언약을 약속한 그곳에서 목사님은 가족과 함께 더 없이 좋은 여름을 지내시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8월 8일이 말복이었는데, 무척 더웠습니다. 그 다음날인 8월 9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 인줄 알았었는데,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뿌리는 어디서부터인가를 알고 싶었는데, 저는 저의 뿌리를 외할머니부터 내려온 신앙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경상남도 남해가 고향이신 외할머니께서 늘 기도하시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중국을 통해서 처음 개신교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멀리 떨어진 남해라는 곳까지 전파되어 저에게까지 전해올수 있었는지 늘 궁금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여러가지를 조회하다가 알아낸 것중 하나는 바로 8월 9일은 우리나라에서 첫 개신교 순교자로 기록되고 있는 토마스 목사가 1866년 중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 날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그해 9월 5일에 대동강변에서 참수형을 당했다고 되어 있고 그 당시 27살이었다고 합니다. 그후 그가 남긴 성경책과 영향으로 1907년 평양대부흥이 일어났다고 했는데, 그 중간과정은 정말 하나님이 일하신것이라고 볼수밖에 없는 놀라움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잘 아시고 계셨겠지만 저는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보고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에 대한 뜨거운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항해를 시작한 1866년 오늘 토마스 선교사는 배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분의 족적을 보면서 저는 그동안 희생의 가치와는 거리가 먼 사치스러운 신앙생활을 하며 지낸것을 고백하게 합니다.

하나가 완전히 죽어 없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거듭나게 허락을 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것이 새언약교회에  분명히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수원에서 홍정 드림.